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성지(成之), 호는 시남(市南). 아버지는 통덕랑 신홍교(申弘敎)이며, 어머니는 풍산유씨(豊山柳氏)로 풍창군(豊昌君) 유운(柳澐)의 딸이다. 가학을 이어받았다.
1798년(정조 2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05년(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임명된 뒤 1818년 성균관전적, 1821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듬 해 이조좌랑을 거쳐 1826년 사헌부지평·함경도도사 등을 지냈고, 1828년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에 겸임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1829년 홍문관수찬이 되어 서연(書筵)에서 강의하였다.
1834년 순조의 장례 때는 봉폐관(封閉官, 무덤의 구덩이를 덮고 봉분을 쌓는 일을 감독하는 관원)으로 참석하였으며, 헌종 즉위 이후에도 입시(入侍,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뵙는 일)하였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낙향 이후에는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시남유고(市南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