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조경(朝卿). 증조부는 예조참판(禮曹參判) 안진(安縝)이고, 조부는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 안상억(安相億)이며,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된 안윤적(安允廸)이다.
1715년(숙종 4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726년(영조 2) 천거로 광릉참봉(光陵參奉)에 보임된 뒤, 여러 직을 거쳐 공산현감(公山縣監)으로 나갔다.
이 때에 흉년과 질병으로 굶주린 백성과 여러 가지 질병과 기아로 죽은 자가 속출하자, 구휼·안집(安集)에 진력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공조좌랑에 이어 1734년 옥천군수로 있을 적에 청렴하지 못하다는 혐의를 받고 삭직되었다가 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 등을 지냈다.
면천군수로 복임하여 고을에 행패를 부린 토호의 작태를 근절시켰다. 1741년 승진하여 청주목사로 나아갔으나 헌납(獻納) 권현(權賢)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어사 윤득재(尹得載)가 면천을 지나다가 토호의 말을 듣고 안종해를 투옥시켜, 용전역(龍田驛)에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