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지(敬止), 호는 만회(晩悔). 엄인술(嚴仁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엄후(嚴후)이고, 아버지는 감찰(監察) 엄성구(嚴聖耉)이다. 어머니는 안몽상(安夢尙)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8년(숙종 4) 정언(正言)이 되고, 부교리(副校理)·사간·집의(執義)·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 청화직(淸華職)에 출입하였다. 1696년 개성부 유수에 승진되었다가 도승지로 전임되었다.
1701년 공조판서 때에 장희빈(張禧嬪)을 논죄하였고, 다음해 의정부좌참찬·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우참찬으로 있을 때 병으로 치사하고 기사소(耆社所: 기로소)에 들었다.
기개가 있고 청렴하였으며, 권문을 멀리하고 당쟁을 싫어하여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만년에 궁핍한 가운데 와병 사실이 상신(相臣: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총칭) 서종태(徐宗泰)에게 알려지자 임금이 약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