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명종 19)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였다. 이황이 죽은 뒤 1613년(광해군 5) 그의 위패를 모셨으며, 1660년(현종 1) ‘연경(硏經)’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622년(광해군 14) 정구(鄭逑) 1676년(숙종 2) 정경세(鄭經世)를 추가 배향하였다. 1639년(인조 17)에는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전경창(全慶昌)을 모셨으며, 1647년(인조 25) 이숙량(李叔樑)을 그 곳에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