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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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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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내용

924년(태조 7)에 신중원(神衆院)과 함께 태조가 창건하여 왕실의 기도도량으로 고려 말까지 존립하였다.

창건 이후 덕종은 1031년(덕종 즉위년) 9월과 1032년 정월과 9월에 이 절에 들렀고, 문종은 1046년(문종 즉위년) 12월에 그의 생일인 성평절(成平節)을 맞아 매년 생일마다 이 절에서 기상영복도량(祈祥迎福道場)을 열게 하였으며, 1047년에는 이 절에 들러서 설법을 들었다.

1085년(선종 2) 4월에는 선종이 이 절에 들렀고, 1098년(숙종 3) 정월에는 왕이 나한재(羅漢齋)를 베풀었으며, 1101년ㆍ1102년ㆍ1105년 이 절에 들렀다. 예종도 매년 이 절에 들렀으며, 1107년(예종 2)에는 다섯 번이나 들렀고, 1114년 4월에는 불정도량(佛頂道場)을 이 절의 문덕전(文德殿)에서 열었으며, 1120년 8월에는 3일 동안 『반야경』을 독송하게 하여 전염병을 물리치기를 기원하였다. 인종도 이 절에 거의 매년 들렀는데, 1140년(인종 18) 윤6월에는 친히 기우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의종 또한 자주 이 절에 들렀으며, 특히 1152년(의종 6) 2월과 9월에는 이 절에서 나한재를 베풀기도 하였다. 명종도 거의 매년 이 절에 들렀는데, 1173년 윤정월과 1177년 8월에는 나한재를 베풀었다.

그 뒤 신종과 고종ㆍ원종 등도 이 절에 들렀다. 특히, 이 절을 자주 찾았던 고종은 몽고의 침입이 있자 1227년(고종 14) 10월에 이 절에 들러서 천황당(天皇堂)을 짓게 하고, 승리를 기원하도록 하였다. 또한, 충숙왕은 1313년 8월에 친히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이 절에서 열어 천재(天災)의 소멸을 기원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에는 충목왕이 행차한 기록이 전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말까지는 이 절이 존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절은 신중원과 함께 창건된 이래 고려왕실의 안녕과 국난의 수호를 위한 기도도량의 구실을 충실히 하였던 사찰이며, 천재나 병란ㆍ질병 등이 있을 때 불력(佛力)과 제석천왕의 힘을 빌고자 하였던 호국사찰이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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