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극(士極)·수부(秀夫), 호는 임여재(臨汝齋). 아버지는 유성오(柳聖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정로(權鼎老)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6대손으로, 특별한 스승 없이 가학을 이어받아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경서를 비롯하여 역사·율려(律呂)·주학(籌學)·음양학·천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을 연구하였다. 여러 번 향시(鄕試)에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에 실패하고, 고향인 하회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렇듯 물러나서 후진들에게 성리학을 강의하고 있던 중 1791년(정조 15) 채제공(蔡濟恭)의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재감봉사(司宰監奉事)·종부직장(宗簿直長)·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사헌부감찰·사직령(社稷令)·경산현령(慶山縣令)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경산현령으로 있을 때에는 풍속교화와 빈민구제에 힘썼다.
1800년 70세 때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경(敬)의 덕목에 입각한 생활을 실천하며 학문을 탐구하였고, 이황(李滉)·유성룡·유원지(柳元之) 등으로 내려오는 학풍을 이어받았다. 저서로는 『임여재문집(臨汝齋文集)』 9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