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증참판 윤지함(尹之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랑 윤엄(尹儼)이다. 아버지는 공조참의 윤민헌(尹民獻)이며, 어머니는 김찬선(金纘先)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되었다. 같은 해 봉교·정언·교리를 거쳐, 1642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정원승지가 되고 이조참의를 지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전도감(殯殿都監)과 국장도감(國葬都監)의 제조(提調)를 겸임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에 승격되고 판의금부사에 올랐으며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인조·효종·현종 3조에 역사하여 80여 벼슬을 지내면서 신명을 바쳐 일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민유중(閔維重)의 탄핵으로 사퇴하여 안산(安山) 옛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