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윤선필(尹善必)의 아들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2년 승정원가주서가 되었으며, 1894년 이후 홍문관교리·홍문관부수찬·중학교수(中學敎授)·양호선무사종사관(兩湖宣撫使從事官)·부안현감 등을 지냈다.
이어 1898∼1900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 6등, 홍문관시독(弘文館侍讀)·비서원승(秘書院丞)을 지냈으며, 1902년 함흥에서 민요(民擾)가 발생하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그곳 수령의 잘잘못을 조사한 바 있다.
1906년 홍주군수가 되었고, 홍주·남포(藍浦) 등지에 소요사태가 발생함에 그곳의 선유사(宣諭使)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해임되었다. 그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가 되었으나 곧 의원면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