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윤이, 이초의 옥사를 일으킨 주모자. 관리.
이칭
이칭
사강(思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파평(坡平)
출생지
미상
관련 사건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사
정의
고려후기 윤이, 이초의 옥사를 일으킨 주모자. 관리.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처음 이름은 윤사강(尹思康)이다. 한때 중이 되었다가 장죄(贓罪)를 범하고 명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윤이(尹彛)라고 바꾸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90년(공양왕 2) 명에서 이초(李初)와 함께 당시 이성계(李成桂)가 옹립한 공양왕은 종실이 아니라 이성계의 인친(姻親)이라는 것과, 이성계 등이 장차 명을 치려 한다는 것, 그리고 이색(李穡) 등 고려의 재상들이 이에 반대하였다가 유배되거나 살해되리라는 것 등을 고소하였다.

이 사실이 고려에 알려지자 고려에서는 대규모의 옥사가 일어나 이색을 비롯하여 이에 연루된 사람들이 유배되거나 국문을 당하고 옥사하였으며, 명에서도 이를 무고로 판정함으로써 이초와 함께 율수현(栗水縣)으로 유배되었다.

한편, 사건 당시 파평군(坡平君)을 자칭하였으나, 실제로 봉군(封君)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건국과 윤이·이초사건」(조계찬, 『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7)
집필자
이익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