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이 지역은 신라시대에는 퇴화군(退化郡) 음즙화현(音汁火縣)이 두어졌던 곳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파사이사금 23년(108) 8월에 음즙벌국이 실직곡국(悉直谷國)과 영역분쟁이 일어나 사로국왕(斯盧國王)에게 청결을 부탁하였으나 파사이사금이 이를 난처히 여겨 나이 많고 지혜로운 김해 금관국(金官國) 수로왕에게 청하매 분쟁지를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6부(部)에 명하여 수로왕에게 연회를 베풀게 하였는데, 5부는 모두 이찬(伊飡)으로 빈주(賓主)를 삼았으나 오직 한지부(漢祉部)만이 위계가 낮은 자를 보내자 수로왕이 노하여 노(奴) 탐하리(耽下里)에게 한지부 주(主)인 보제(保齊)를 죽일 것을 명하고 돌아갔다.
노가 도망하여 음즙벌국 타추간(陀鄒干)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신라왕이 사람을 보내 노를 수색하였으나 타추가 보내지 않는지라 왕이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정복하였다고 한다.
음즙벌국을 비롯하여 파사이사금대에 사로국에 복속되는 다벌국(多伐國)·비지국(比只國)·초팔국(草八國)·실직국(悉直國) 등은 경주 인근과 동해안 지역에 위치하였던 소국들로서 서기전 3, 2세기 이래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를 배경으로 형성, 발전되어온 소규모 정치집단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