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공후(公厚). 이원응(李源膺)의 아들이다.
판관(判官)으로 있으면서 1864년(고종 1) 음직인 경과증광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바로 대사간에 중용되었으며, 1866년 영건도감(營建都監)의 일에 참여하여 근정문의 상량문 서사관(書寫官)을 지냈다.
1868년 이돈상은 전라우도암행어사(全羅右道暗行御史)가 되어 전주(全州) 만마동(萬馬洞)에 진(鎭)을 설치하도록 보고하였다.
1869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73년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예방승지를, 그해 12월 동의금부사를 지냈다. 1876년 이조참판이 되었고, 그해 7월 전라감사에 제수되었다. 1880년 1월 전라감사 재임시의 공을 인정받아 정경(正卿)으로 승진 발탁되었으며, 그해 2월 공조판서가 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감시복시(監試覆試)의 시관의 일로 인하여 전라도 고금도로 정배되는 징계를 받았으나, 9월에 석방되었다. 1881년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5월 한성부판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