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신지(新之), 호는 사봉(沙峰). 할아버지는 이운증(李堣曾)이며, 아버지는 이엽(李曄)이다.
1396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에 보직되었으며, 사헌부감찰·사간원우헌납·장령·사인·집의·좌사간대부·형조참의 겸 지도관사(刑曹參議兼知都官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5년(태종 15)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이 되고 좌부대언에 승진하였다.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을 거쳐 병조참판으로 전임하였고, 그 뒤 강원도관찰사·예조참판·대사헌·동지총제를 역임하였다. 1430년(세종 12) 공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병조판서를 거쳐, 다시 공조판서가 되었다. 1438년 중추원부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그 뒤 판한성부사·인순부윤(仁順府尹)을 지냈다. 1442년 70세가 되어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다시 지중추원사로 복직하였다. 이어서 판중추원사에 승진하여 궤장을 하사받았다.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공주의 명탄서원(鳴灘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