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사간원대사간, 해방총관,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1년(헌종 7)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봉산(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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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사간원대사간, 해방총관,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봉산(鳳山).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로로 이듬해에는 사대당 내각의 후영사(後營使) 겸 포도대장·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85년에는 해방총관(海防總官)이 되었으나, 그해 8월 직권남용과 근무태만의 혐의로 전 정언 조진설(趙鎭卨)의 탄핵을 받아 삭직당하고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893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고종시대사』2·3(국사편찬위원회, 1968·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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