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산(鳳山).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로로 이듬해에는 사대당 내각의 후영사(後營使) 겸 포도대장·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85년에는 해방총관(海防總官)이 되었으나, 그해 8월 직권남용과 근무태만의 혐의로 전 정언 조진설(趙鎭卨)의 탄핵을 받아 삭직당하고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893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