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명서(鳴瑞)
은봉(隱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0년(인조 18)
사망 연도
1705년(숙종 31)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개성유수|전라도관찰사|대사헌|형조참판
관련 사건
갑술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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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명서(鳴瑞), 호는 은봉(隱峰). 이주(李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창정(李昌庭)이다. 아버지는 지평 이완(李완)이며, 어머니는 이원량(李元樑)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숙종 1) 생원이 되고, 이 해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수찬(修撰)으로 등용된 뒤 사인·부제학 등을 거쳐 1691년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 1694년 대사헌이 되었다. 같은 해 갑술옥사가 일어나 남인이 제거될 때 함께 파직되었다. 1698년 형조참판으로 복직되고, 1701년 부사직으로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사사(賜死)를 반대, 지도(智島)에 위리안치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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