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지숙(持叔). 이사경(李士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후지(李後地)이다. 아버지는 나주목사 이하악(李河岳)이며, 어머니는 이중로(李重老)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94년(숙종 2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전설사별검(典設司別檢)으로 등용되고, 의금부도사·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감찰·공조좌랑·황주판관·남원현감·성균관직강·병조좌랑·병조정랑·시강원사서·문학·지평·정언·경기도도사·동래부사, 병조·예조·호조·형조의 참의, 경상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03년에 한성우윤이 되고, 이어 대사간·도승지·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형조참판으로 재직 중 죽었다. 특히 동래부사로 있을 때에는 간사한 왜인들의 버릇을 고쳐, 왜인들이 100년 이래의 두려운 부사라고 찬탄을 하였다. 지방관으로 나갔을 적에 많은 치적을 올려 임금이 중용하려 하였는데 갑자기 죽어 모두 애석해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