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은 일제강점기 만주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 집행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집행위원 등으로 활약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고려공청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중요한 인물로 활약하다가 1928년 하반기 모스크바에 유학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유학한 후 국내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순(李淳)은 189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순(李順)‧이창희(李昌熙)이다. 1914년 러시아로 이주하여 6년 동안 탄광에서 일하였다.
1920년 이르쿠츠크 국제노동협회에 가입하였고, 12월 러시아 공산당 이르쿠츠크 당 학교에 입학하였다. 1921년 3월 시베리아 내전 당시 빨치산부대에서 활약하였다. 1923년 6월 지린성〔吉林省〕 연길현 용정에서 간도에서 조직 확대를 도모하던 서울파의 김사국과 함께 고려공산청년회 간도 야체이카(세포조직)를 조직하였다. 1924년 초에 고려공청 간도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4년 12월 25일 만주 고려공산청년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순과 함께 노령에서 동만주 지방으로 온 사람들은 1924년 하반기에 파벌을 청산하고 노령 지방 한인 공산주의운동의 통일을 이루려 하였으며, 연해주에서 당과 공청 기관의 청년들로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1925년 1월 러시아공산청년동맹으로부터 종파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14명의 동료와 함께 제명 처분을 받았다.
1926년 10월 만주고려공산청년회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하여 집행위원이자 동만구역국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봄에는 동만구역국의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 때 일제의 검거를 피해 남만주의 지린성 반석현(磐石縣)으로 이동하였다.
1928년 4월 ML파의 고려공산청년회 남만구역국에서 조직 활동을 지도하였다. 1928년 하반기 모스크바에 유학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1932년까지 수학하였다. 1938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하던 황석주(黃錫柱)‧박순구(朴淳九)‧박종순(朴宗淳)과 함께 반전(反戰) 투쟁으로 항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2월 청진의 ‘전투적 공산주의동맹’의 결성을 지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