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중추원일등의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경원(景元)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2년(헌종 8)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경기도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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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중추원일등의관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원(景元).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7년(고종 4) 유학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871년 교리에 임명되었다. 1872년 남전작헌례(南殿酌獻禮)시에 대축(大祝)으로 참여하여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다. 1880년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대사간 재임시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이 일본에서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들여오자, 유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상소를 통해 위정척사운동을 벌여 나갔다. 그런데 영남유생 중 이만손(李晩孫)의 상소가 패륜적이며 조정을 헐뜯고 기만한다 하여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하였다.

1882년 왕세자의 관례(冠禮) 때에는 예방승지로 참여하였고, 188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 민종묵(閔種默)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보정부(保定府)에 억류되어 있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을 만나고 돌아온 뒤 곧 이조참판이 되었다.

1885년 증광별시문과의 초시 시관(初試試官)을 맡았고, 이어 사간원 대사간에 재등용되었다. 1886년 승정원 좌승지로 원의계(院議啓)를 주도하였으며, 1887년 이범진(李範晋)과 함께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에 등용되었다.

1890년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고종에게서 울릉도의 산림을 벌채하는 일본인을 철저히 막으라는 지시를 받고 부임하였다. 그러나 함경도 방곡령(防穀令) 사건으로 일본정부의 견제를 받고 있던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趙秉式)과 잠시 서로 자리를 바꾸었다가 다시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리고 장릉수개(莊陵修改)시에는 감동(監董)으로 가자되었다.

1891년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 당시 고성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였다. 1892년 함경도 관찰사로서 중군(中軍) 유정(劉貞)과 더불어 탐학을 자행하였다가 전 정언 주욱환(朱昱煥)을 중심으로 한 함흥부민이 봉기하자 안핵사(安覈使) 이건창(李建昌)의 건의로 견책, 해직되고 의금부에서 문죄당하여 무주에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곧바로 사헌부대사헌에 임용되었다. 이해 덕원부에서도 민란이 일어나 이에 대한 장계를 올리기도 하였다.

1897년 궁내부 특진관이 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다가 중추원 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에 임명되었다. 1899년 규장각 직학사(奎章閣直學士)에서 다시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다.

1901년 칙임관 3등이 주어지고 장례원경(掌禮院卿)이 되어 책비(冊妃)시에는 부사로서 가자되었으며, 어진도사도감제조(御眞圖寫都監提調)도 맡았다. 이해 다시 특진관이 되었다가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에 등용되었다.

이듬 해에는 장례원경에 재임용된 뒤 시종원경(侍從院卿)이 되었다. 1903년과 1905년 두 차례에 걸쳐 장례원경을 역임하는 등 왕실의 의례(儀禮)를 맡아보았다. 1905년 예식원장례경(禮式院掌禮卿)에 임명되어 칙임관 2등에 서임(敍任)되었다가, 임시서리궁내부대신사무(臨時署理宮內府大臣事務)를 지냈으며, 1907년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문품안(文品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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