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순(穉順). 호는 동포(東圃). 선조의 넷째 아들인 신성군 이우(信城君 李珝)의 후손이며, 이직(李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황(李廷惶)이다. 아버지는 공조좌랑 이염(李琰)이며, 어머니는 원경하(元景夏)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원릉참봉(元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에는 참봉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를 거쳐 그 이듬해에는 전적이 되었다. 1806년 부수찬으로 있으면서 의리를 지켜나가기를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며, 그 뒤 우부승지를 지냈다.
1812년에 대기근이 연속되고 또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평안도감진사(平安道監賑使)로서 백성들의 구호와 관군의 군량미조달을 감독하는 한편, 반란이 진압된 뒤에는 안핵사(按覈使)를 겸하여 민심수습에 전력하였다. 그 뒤 좌부승지와 좌승지를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계되어 성균관의 대사성이 되었다.
뒤이어 완원군(完原君)을 습봉(襲封)하고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이 되었는데, 특히 병조참판으로 있을 때는 군비를 확충하고 군기를 확립하여 국내외의 도전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뒤 다시 동지의금부사에 취임해서는 지배층의 기강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