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6년(문종 30) 4월 요나라의 황후가 상을 당하자 형부시랑으로 호부상서 왕석(王錫)과 함께 사신으로 다녀왔다. 1081년 4월 이부시랑으로 예부상서 최사제(崔思齊)와 함께 송나라에서 의약(醫藥)을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왔다.
이듬해 8월 우부승선(右副承宣)이 되었으며, 1086년(선종 3) 5월 추밀원부사로서 과거를 주관하였으며, 같은 달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요나라를 다녀왔다.
1087년 7월 동북면병마사 겸지행영병마사(東北面兵馬使兼知行營兵馬使), 9월 검교사공, 12월 동지중추원사(檢校司空同知中樞院事)가 되었고, 1090년 2월 상서우복야 참지정사 수국사(尙書右僕射參知政事修國史)가 되었다.
1092년 8월 재상감교(宰相監校)로 있을 때 송나라에 보내는 국서(國書)에 요나라의 연호를 써서 보낸 실수로 파직되었으나, 곧 왕의 총희(寵姬)에게 아첨하여 상서우복야 권지문하성사 겸 서경유수사(尙書右僕射權知門下省事兼西京留守使)에 임명되었다.
1094년(헌종 즉위년) 6월 문하시랑평장사 상주국(門下侍郎平章事上柱國)이 되었으나, 1095년 7월 이자의(李資義)의 반란에 연루되어 남쪽 변방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