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연계(蓮溪).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2대손이며, 공조판서 이중경(李重庚)의 아들이다.
용력이 뛰어나고 병서에 정통하며 사술(射術)에 능통하니, 참으로 장군의 재질을 가지고 있다고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의 칭찬을 받기까지 하였다.
1743년(영조 19) 사리평(沙里坪)에서 무술연습을 할 때 그 실력을 인정받아 크게 부각되는 한편, 왕으로부터 표범모피를 하사받았다. 1761년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나 부하들을 검속하지 못하여 수렴하는 폐단을 일으켰다고 영종진(永宗鎭)에 추방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776년(영조 52) 훈련대장이 되었다가 민가를 약탈한 혐의를 받아 교동에 충군(充軍)되고, 다시 진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뒤 1780년(정조 4) 풀려났다. 특히, 활쏘는 솜씨가 탁월하여 70세가 넘어서도 모화관(慕華館)까지 나아가 활을 쏘아 날아가는 고니를 명중시켜 상으로 궁시(弓矢)를 하사받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