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종순(鍾淳). 이명은 양건호(梁健浩). 대구 출신. 농업학교를 중퇴하고, 19세에 대구은행에 들어가 출납계 주임이 되었다. 1917년 만주에서 온 독립운동가와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은행돈 1만 9000원을 가지고 미국유학을 하려다가 만주로 가서, 그 이듬해에 통화현(通化縣) 독립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학을 배웠다.
1919년 상해에서 폭탄제조법을 배우고 의열단을 조직한 뒤 단원 최경학(崔敬鶴)에게 폭탄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게 하여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20년에 의열단 부단장이 된 뒤 폭탄을 밀수입하여 일본 각 기관 파괴를 기도하였으나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1922년 3월 상해를 방문한 일본육군대장 다나카[田中衣一]를 저격하다가 실패하고 붙잡혔다. 뒤에 탈출하여 1923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신임장을 휴대하고 군자금모금차 밀입국하여 활약하던 중 대구에서 일본관헌에 잡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