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광정(光正). 자는 경복(景服). 이위(李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제원(李濟遠)이고, 아버지는 이채(李采)이며, 어머니는 최항진(崔恒鎭)의 딸이다. 이화(李禾)에게 입양되었다.
1813년(순조 13) 교관으로 있으면서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자를 거쳐 1824년 의주부윤, 1829년 예방승지·행호군을 역임하고, 1834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들어가 외교적 성과를 얻고 귀국하였다.
1837년(헌종 3) 경상도관찰사, 1839년 강원도관찰사, 1841년 한성부판윤·대사헌, 그 이듬해 호조판서, 1843년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850년(철종 1) 지돈녕부사가 되었으나 고령을 이유로 왕에게 여러 차례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 치사한 뒤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집으로 『방야만록(方野漫錄)』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