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관보(寬甫), 호는 명고(鳴皐). 아버지는 관찰사 임윤신(任允臣)이며, 어머니는 윤씨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선조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화에 출전한 호남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그 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박학능문(博學能文: 학문이 넒고 문장이 능함)하다는 원접사 유근(柳根)의 장계(狀啓)에 따라 제술관(製述官)으로 발탁되었다.
만년인 광해군 때에는 재야에 있으면서 정권을 농단하는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을 질척하였다. 당대의 재야학자로서 대문장가인 권필(權鞸)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시명이 높았다.
뒤에 임진왜란 때 올린 공적에 따라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추록되고, 집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명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