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응팔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경상북도의 산남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장.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8년(고종 15)
사망 연도
1971년
출생지
경상북도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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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경상북도의 산남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장.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종의 측근에서 시위하던 정환직(鄭煥直)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운동을 재개하라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를 하향시켜 의진(義陣)을 구성하도록 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1906년 1월 경상북도 영천으로 하향하여 정순기(鄭純基)·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우재룡(禹在龍) 등과 더불어 경상북도 동대산(東大山)을 중심으로 6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봉기하고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구성하였다. 이때 전응팔은 산남의진에 가담, 활동하였다.

이들은 영덕·청하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다가 정용기가 붙잡힘으로써 활동이 중지되었다. 그 뒤 정용기가 석방되자 1907년 4월 400여명의 의병이 재규합하여 동대산에서 다시 일어났다. 청하·청송·영천 등을 전전하면서 활동하다가 이해 9월 정용기가 입암리전투에서 전사한 뒤, 전응팔은 정환직을 따라 잔존부대를 이끌고 흥해·영덕·청송·청하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 해 정환직 등이 붙잡힘으로써 삼남의진은 무너졌고 전응팔도 함께 일본경찰에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산남창의지(山南倡義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의병운동사』(김의환, 박영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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