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 아버지는 대사간 정계순(鄭啓淳)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고,그 뒤 여러 벼슬을 거친 뒤 진주목사가 되었다.
181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혜국(惠局)의 낭(郎)이 되었으며, 1822년에는 아들 정원용(鄭元容)이 문과에 급제하여 크게 영달하였으므로 추은(推恩)의 혜택을 입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첨지중추부사로 취임하였다. 그 뒤 곧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어 왕실친족간의 친목도모에 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