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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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민족혁명당 ·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구락부 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중국에서 작곡가로 활동한 음악가.
이칭
이칭
정부은, 유대진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4년
사망 연도
1976년
출생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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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민족혁명당 ·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구락부 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중국에서 작곡가로 활동한 음악가.
개설

아명(兒名)은 정부은. 별명은 유대진(劉大振). 광주 출신. 숭일학교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녔다. 첫째형 정남근과 둘째형 정인제, 셋째형 정의은 등이 모두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담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3년 봄 셋째형 정의은( 조선공산당 당원), 누나 정봉과 함께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해 제2기(1933.9∼1934.4.)로 졸업하였다.

그 뒤 민족혁명당 당무를 보는 한편 남경과 상해를 오가며 음악공부를 하였다. 1936년 남경에서 오월문예사(五月文藝社)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한편, 상해에서 김성숙 · 박건웅 등이 건립한 조선민족해방동맹(朝鮮民族解放同盟)에도 가담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후 남경을 떠나 1937년 10월 중국공산당의 본부가 있는 연안(延安)에 도착하였다.

연안에서 섬북공학(陝北公學)에 다니고, 1938년 5월부터는 노신예술학원(魯迅藝術學院) 음악학부에서 수학하였다. 그후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서 활동했으며, 1939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12월부터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배치되어 음악을 가르쳤다.

음악을 작곡하는 한편 1941년 7월부터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섬감녕분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陝甘寧分會), 이듬해 12월부터 태행산(太行山)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華北朝鮮革命靑年學校) 등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4월 다시 연안으로 돌아온 뒤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 해주에서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음악 인재를 양성하였다. 1947년 평양으로 들어와 조선인민군 구락부의 부장을 지냈고, 인민군협주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되었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갔다가 같은 해 12월 중국인민지원군의 한 사람으로 귀국하여 전선 위문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에 종묘제례악과 연례악 등의 궁중음악 악보가 무단 반출되었는데, 정율성이 이 자료를 확보하여 가지고 있다가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야 그의 아내 딩쉐쑹(丁雪松, 정설송)이 한국 정부에 반환하였다. 1951년 4월 중국으로 가 1976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작곡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연안에 있을 때 작곡한, 「연안송가(延安頌歌)」와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이후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 군가로 바뀌어 불렸다) 외에, 「3.1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조선인민군행진곡」, 「두만강」 등이 있다.

참고문헌

『關內地區朝鮮人反日獨立運動資料彙編』下(楊昭全 等編, 遼寧人民出版社, 瀋陽, 1987)
『思想情勢視察報告集(其の二)』(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
「불멸의 노래와 더불어」(『중국의 광활한 대지 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1987)
『(항일음악전사) 鄭律成 : 光州가 낳은 중국 3대 혁명음악가의 삶』(이건상 · 김기중, 광주: 대동문화,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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