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상백(常伯), 호는 기은(機隱). 정구(鄭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희등(鄭希登)이고, 아버지는 경력 정근(鄭謹)이며, 어머니는 증 참판 유수훈(柳秀薰)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재랑(齋郎)에 이어서 사복시주부로 승직되었다. 161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늙은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남평현감을 희망하였으나, 배천군수로 발령되어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 공적으로 통정대부로 승품되었다.
1620년에 연안부사로 나갔다가 1623년(인조 1)에 간원의 탄핵을 받아 사임하였다.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난이 끝나자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었다. 1628년에 천안군수로 나갔다가 파직되었으며, 1632년에 파주목사로 복직되었다.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