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기용(錤用).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에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창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서울의 보성전문학교 상과(商科)에 입학하였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곧 중퇴하였다.
화가의 길을 택하여 도쿄(東京)으로 가서 니혼(日本)미술학교에서 서양화(西洋畵)를 전공하고 1938년에 졸업하였다. 그 사이, 도쿄의 신자연파협회전(新自然派協会展)에서 수상을 거듭하였다. 미술학교를 마친 뒤에도 도쿄에 머무르며 동경미술공예학원의 순수미술 연구과정을 밟았고, 독립전(独立展)에도 참가하였다.
1941년에는 도쿄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 · 최재덕(崔載德) 등과 신미술가협회(新美術家協會)를 조직하고, 1944년까지 도쿄와 서울에서 여러 차례 회원전을 가졌다.
그 시기의 작품은 향토적인 표상으로 소와 새를 즐겨 소재로 삼은 황갈색조로 향토적 서정을 표현했다. 광복 후 고향의 무장중학교 교장을 지냈다.
1948년에 설립된 홍익대학 미술과 교수로 취임하여 새로운 작품활동도 기대되었으나, 한국전쟁 중에 고향에 피란하여 있다가 유탄에 맞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