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채흥선(蔡興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고,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학록·학정·박사, 감찰, 형조좌랑, 정언·지평, 함경도사·예조정랑·영월군수 등을 거쳤다. 그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에 걸쳐서 화친을 배척하는 상소를 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달려가 인조를 위문하고 율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와 같은 그의 존주절의(尊周節義)가 높이 평가되어 1755년(영조 31)에는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