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문수(文叟). 호는 우헌(愚軒)·여물헌(與物軒). 용궁(龍宮) 출생. 채천계(蔡天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이복(蔡以復)이고, 아버지는 채기종(蔡起宗)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경장(金慶長)의 딸이다.
재종숙 채지수(蔡之洙)에게 입양되었으며, 홍여하(洪汝河)·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조·병조의 낭관(郎官)을 거쳐 사간원의 정언·헌납, 사헌부지평, 시강원필선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진주목사·인동현감·영해부사 등을 지냈다.
1719년 통정(通政)에 올라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진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서리(胥吏)들이 충신묘(忠臣廟)에 제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보고, 초헌(初獻)은 병사가, 아헌(亞獻)은 목사가 하도록 규칙을 설정하였고, 촉석루를 수리하였다.
또 영해부사로 있으면서도 백성들에게 문풍(文風)을 고취시켰다. 저서로는 『우헌문집(愚軒文集)』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