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신라3최(新羅三崔)로 알려진 평장사(平章事) 최언위(崔彦撝)의 아들이다.
진사과에 합격한 뒤 빈공진사(賓貢進士)로 진(晉)나라에 유학 가던 도중 거란의 포로가 되었으나 재주를 인정받아 관직을 받았다. 이 무렵 거란이 고려를 침략할 것을 알고 이를 고려에 보고하여 정종이 30만의 대군으로 광군(光軍)을 창설, 서경에 주둔시켜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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