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초명은 최석(崔錫). 태조(太祖) 때의 공신(功臣) 최준옹(崔俊邕)의 후손으로, 평장사(平章事) 최유청(崔惟淸)의 아버지이다.
1051년(문종 5)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를 지내고, 1075년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요나라에 가서 천안절(天安節)을 축하한 뒤 귀국하여 전중감지어사대사(殿中監知御史臺事)가 되었다. 1077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거쳐 1080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정주(靜州: 현재 평안북도 의주)지방의 여진족(女眞族)을 정벌하였다. 1082년 이부시랑(吏部侍郞)으로 지공거(知貢擧: 고려시대 과거시험관)를 겸임하였다.
이듬해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1086년(선종 3)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이듬해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수국사(修國史)를 역임하였다. 1088년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로 지공거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최사추(崔思諏)와 함께 을과(乙科) 김부필(金富弼) 등을 선발하였다. 이어 수태보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예부사(守太保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禮部事)에 이르렀다. 최유선(崔惟善)·이정공(李靖恭) 등과 함께 당대의 문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시호는 예숙(譽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