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원지(元之), 호는 오계(梧溪). 한서용(韓瑞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장손(韓長孫)이고, 아버지는 사도시정 한증(韓曾)이며, 어머니는 이삼노(李三老)의 딸이다.
1489년(성종 20)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에 등용된 뒤 승문원부정자·예문관검열·승문원주서·홍문관박사가 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한때 사직하였다.
다시 봉상시주부로 복직, 병조좌랑·수찬·교리·장령·집의·검상·사인·응교·전한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함경도진휼경차관(咸鏡道賑恤敬差官)이 되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돌아와 사간을 거쳤다.
1516년(중종 11) 황해도문폐어사(黃海道問弊御史)가 되었다가 직제학·부제학·동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520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서 도승지·병조참지·병조참판이 되었다.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경상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공조판서·좌참찬·우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장성(章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