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계중(啓仲). 허감(許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집(許緝)이고, 아버지는 허인(許璘)이며, 어머니는 유하진(兪夏震)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정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된 혐의를 받던 소론 이진유(李眞儒)의 절도안치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장령·헌납·집의·사간을 지내면서 궁가절수의 폐단과 궁궐 소속 관리들의 횡포를 비판하였고, 부정을 저지른 수령들을 탄핵하였다. 1732년 사간으로 가뭄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실정(實政)에 힘쓰고, 궁궐과 관청의 경비를 줄이도록 건의하였다. 이후 집의·보덕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