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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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도 / 전 심사정
맹호도 / 전 심사정
회화
개념
호랑이를 소재로 한 영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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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호랑이를 소재로 한 영모화.
내용

호랑이가 지니고 있는 용맹성에 기인하여 주로 수호적인 기능으로 많이 그려졌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음양오행설과 결부되어 사신도(四神圖) 중 서쪽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당대부터 많이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유작은 남송대 목계(牧溪)의 「맹호도」가 가장 오랜 유례이다. 이 당시의 맹호도는 선종(禪宗)의 선기(禪機)와도 유관함을 보인다. 그리고 호랑이 그림은 역사성에 바탕을 두고 섣달 그믐날 이른 새벽에 잡귀를 물리치고 액막이의 구실로 그려진다. 중국에서는 닭이 그려지나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가 많이 취급되었다.

맹수의 우두머리인 호랑이는 또한 신선 사상과도 결부되어 산신령의 환신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호랑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수렵도를 비롯하여 후기의 사신도에서 생동하는 양태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여러 문집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 그림을 전문으로 그려 화명을 떨쳤던 고운(高雲)을 중심으로 하여 본격적인 발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후기에 이르러 호랑이 그림은 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와 강세황(姜世晃), 이의양(李義養) 등이 많이 그렸다. 이 당시의 호랑이 그림은 배경에 소나무와 계곡을 두고 검은 줄무늬의 호랑이가 몸을 틀어 포효하는 자태를 많이 다루었다. 털은 대체로 꼼꼼하게 공필적(工筆的)으로 다루었다. 그 대신 배경의 수목이나 산수는 매우 간략하게 다루어 대조적인 기법을 보였다.

특히 김홍도의 맹호는 부릅뜬 눈의 모습이라든가 털의 거친 질감, 방향을 바꾸는 본래의 탄력성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 호랑이 그림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호랑이 그림의 전통은 조선 말기로 계승되어 이의양·백은배(白殷培) 등의 화가에 의하여 적지 않은 수의 호랑이 그림이 그려졌다.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영모화(翎毛畵)」(홍선표, 『국보 10 -회화-』,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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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홍선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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