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소련에서 태생하여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마치고, 1931년 10월 경, 당시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속성과를 졸업한 국내파 공산주의자 김용범의 내연의 처가 되었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입국하여 1935년 3월경까지 주영하(朱寧河) 등과 더불어 적색노동조합 조직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장기간 수감되다 해방후 출감하여 북한정권 출범시 남편 김용범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정국 당시 북한에서 국내파 가운데서도 김일성의 단일지도체계 확립에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유로 숙청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요직을 맡아 활약하다 1960년대 말 김일성이 진행한 반대파들에 대한 숙청사건 이후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1년부터 1935년 3월까지 국내에 잠입하여 적생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잠행활동을 하였고, 1945년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북한 정권수립에 가담하였다.
1945년 초대 북조선 여성동맹 위원장을 지냈고, 1959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권력서열 5위)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