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갑옷 (비늘옷)

고대사
유물
일정한 크기로 재단한 미늘[小札]을 엮어 착장자의 몸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갑옷의 일종.
이칭
이칭
찰갑(札甲), 괘갑(挂甲)
정의
일정한 크기로 재단한 미늘[小札]을 엮어 착장자의 몸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갑옷의 일종.
개설

비늘갑옷은 삼국시대 이후 줄곧 사용된 갑옷이다. 한자어로는 찰갑(札甲)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괘갑(挂甲)이라고 한다. 일정한 크기의 작은 미늘을 수십 매에서 수백 매씩 가로 또는 세로로 엮어 만들어 활동성을 극대화시켰으며, 동물 가죽과 같은 유기질제로 연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보다 큰 철판으로 결합한 동시대의 철제 판갑(板甲)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게와 착용감, 유동성 면에서 효율성이 크게 높은 실용적인 갑옷이다.

내용

보통 비늘갑옷은 착장자의 상체를 보호하는 가죽제 갑옷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부속한 상하로 연결된 철제 경갑(頸甲) 및 요갑(腰甲) 등으로 구성된다.

비늘갑옷의 제작원리는 다음과 같다. 가로로 연결한 미늘을 세로로 엮는다. 이때, 세로로 엮는 미늘은 하단에 있는 미늘이 상단의 미늘의 외면에 겹쳐지는 소위 외중식(外重式)으로 제작된다. 외중식으로 제작할 경우, 수결끈이 바깥으로 연결되어 윗단의 수결공에서 아랫단의 수결공까지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씩의 가동성(可動性)을 가진다.

대부분의 발굴품은 구조가 복잡하고 출토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조복원을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원형복원 때에 특별히 유의할 점은 각 미늘의 연결기법은 물론이고 다각적인 설계원리의 분석과 함께 기술적인 측면을 염두에 둔 면밀한 비교검토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비늘갑옷이 출토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부산 복천동·학소대·연산동, 김해 대성동·양동리·두곡리·능동, 창녕 교동, 합천 옥전, 고령 지산동, 경주 월성로·구어리·쪽샘·황남대총·사라리, 상주 신흥리, 울산 중산리·하삼정, 경산 조영동·임당동, 함안 도항리·말산리, 남원 월산리, 대구 달서·문산리, 포항 옥성리 유적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비늘갑옷은 미늘을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기동성이 극대화되어, 착장하고 활동할 때 활발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지판의 부위가 정해져 있어서 형태를 맞추어 만드는 판갑에 비해 같은 미늘을 수백 매 이상을 엮어 만든 비늘갑옷은 분업이 가능하고 수리가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비늘갑옷은 미늘을 계속해서 겹쳐서 엮으므로, 철판이 겹쳐지는 부위가 적은 판갑에 비해 실제로는 더 두껍다. 게다가 미늘 위로 수백 매 이상의 미늘을 가죽끈을 이용해 가로 세로로 계속해서 엮기 때문에, 가죽의 두께까지 더해져 높은 강도를 가지는 뛰어난 무구라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기술적인 연결방법은 곧 군사작전에 필요한 기동성 이외에 강도 또한 우수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비늘갑옷을 통해 중장기병의 유무, 중무장한 군사의 등장과 함께 좁게 본다면 피장자의 군사적 성격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고대갑주』(복천박물관, 2010)
『경주쪽샘유적-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성과-』(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0)
「삼국시대 영남 출토 찰갑의 연구」(황수진,『한국고고학보』78, 2011)
『(增補)日本上代の甲冑』(末永雅雄, 木耳社, 1984)
「長持山古墳出土挂甲の硏究」(塚本敏未,『王者の武裝-5世紀の金工技術-』,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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