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하 초상 ( )

권상하 초상
권상하 초상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후기 문신 수암 권상하의 초상화.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수암 권상하의 초상화.
구성 및 형식

수암(遂菴) 권상하의 초상화(權尙夏, 1641∼1721)로, 비단 바탕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 바닥에 앉은 모습으로 그린 전신상)이다.

화면 위에 '한수옹 칠십구세진(寒水翁七十九歲眞)'이라는 제기가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기해사월일 화사김진여모(己亥四月日畵師金振汝摹)'라는 관지(款識)가 있는데『한수재집(寒水齋集)』의 연보(年譜)에 권상하가 79세 되던 1719년(숙종 45)에 김진여(金振汝, 1675∼1760)가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三月寫眞像, 畵師關西金振汝也]과 일치한다. 옥애(玉崖) 김진여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원 화가이며 사대부 초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1719년(숙종 45) 에 숙종이 59세로 기로소에 들어간 일을 기념해 열린 여러 행사의 기록화와 관련 기로신들의 초상화를 수록한 「기해기사첩(己亥耆社帖)」제작에 참여하였다.

내용

권상하는 노론계 송시열과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학맥을 이은 제자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60년(현종 1)에 진사가 되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커다란 화면을 채우며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는 이 초상화는 노학자의 당당한 풍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이다. 심의에 복건(幞巾: 머리에 쓰는 건의 하나. 머리 뒷부분은 곡선이고 앞단에서 귀 윗부분에 좌우 2개씩의 주름을 잡고 아래 주름 속으로 끈을 달아 뒤로 돌려맨다)을 착용하였고, 가슴에는 흰색의 광다회(廣多繪: 의복에 두르는 폭이 넓고 납작한 모양의 허리띠)를 매었다.

부드러운 필선과 선염으로 표현한 이목구비에 눈 주변과 입술 아래, 법령에 밝은 색의 안료를 더함으로 입체감을 강조해 개성적인 얼굴 모습과 함께 주인공의 강직한 성격을 표현하였다. 검버섯, 콧잔등 위 사마귀 등의 세심한 묘사는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을 말해준다.

적절한 비례감이 느껴지는 신체의 묘사는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앉음새를 보여준다. 대담한 필선에 음영이 가해진 옷 주름과 하얀색의 안료로 섬세하게 그린 물결 모양의 무늬는 옷감의 독특한 질감과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묘사하였고, 마치 꽃봉오리처럼 안으로 말아 넣은듯한 풍성한 옷자락의 끝은 굵고 검은 단과 함께 화폭에 운율감을 전달하며 화가의 개성적인 양식을 말해준다.

권상하 초상화의 초본인 「수암영초(遂菴影草)」 한 본이 안동권씨 화천군파 종중에 전하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현황

세로 132㎝, 가로 90.3㎝에 달하는 큰 크기의 초상화이며 족자 형태로 표구되었다. 비단 바탕과 그림 부분에 박락된 부분이 많다. 안동 권씨 문순공파 종중 소장이며 제천의병전시관에서 관리한다.

권상하의 초상이 봉안되었던 안동 권씨 문순공파 종중의 황강영당은 원래 그가 생시에 쓰던 서재인 한수재(寒水齋)를 영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한수재는 권상하가 46세 되던 1686년(숙종 12)에 낙성되었고, 송시열은 직접 편액을 써주었다. 권상하의 사후 4년째인 1725년(영조 1)에 세운 황강 묘정비에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59)이 쓴 비문에 초상화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에 유행한 한림학사풍(翰林學士風) 사대부 초상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화원 화가 김진여의 화풍을 보여주는 예로 회화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심의에 가해진 흰색 물결 모양의 문양은 다른 초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화양서원과 만동묘』(국립청주박물관, 2011)
『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한국초상화 연구』(조선미, 열화당, 1989)
「옥애 김진여(1675∼1760)와 18세기 전반 초상화의 일변」(문동수,『미술자료』81, 2012)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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