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반신상으로 한원진은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었으며 가슴 아래에 세조대(細絛帶: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만든 실띠)를 맨 공수 자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면 위쪽에 “남당한선생진상(南塘韓先生眞像)”이라는 제기가 있다.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결성(結城: 지금의 홍성) 남당에 거주하며 지명을 호로 삼았다. 본관은 청주, 자는 덕소(德昭)다. 어릴 때부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다고 하며 21세 때 황강으로 권상하를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권상하의 문인 중 대표적인 여덟 명을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라고 하는데, 한원진, 위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1681∼1767),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 1683∼1741), 화암(華巖) 이이근(李頤根), 관봉(冠峰) 현상벽(玄尙璧), 매봉(梅峰) 최징후(崔徵厚), 추담(秋潭) 성만징(成晩徵, 1659∼1711)을 말한다. 이중 한원진은 이간과 함께 가장 뛰어난 제자로, 송시열과 권상하의 학맥을 이었다.
이 작품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공수 자세의 모습으로, 일반적인 사대부의 반신상에 비해 얼굴이 작고 신체 부위가 비교적 크게 그려져 당당한 체구가 드러나는 반신상이다. 시선을 내려뜨리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과 공손한 자세는 사려 깊은 학자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얼굴은 배채한 후 살색 필선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고 미간과 눈 주위, 법령과 양쪽 뺨에 약간의 선염을 가해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얼굴을 앞으로 숙임으로 두드러지는 약간 굽은 코가 얼굴 생김새의 특징을 강조해준다. 비수의 차이가 거의 없는 회색의 필선으로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한 옷 주름은 복건, 심의의 깃, 세조대의 검은 색과 대조를 이루며 강직한 문인의 성정을 드러낸다.
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족자 형태의 초상화로, 크기는 세로 80.9㎝, 가로 60.5㎝이다. 박락된 부분이 많으며 특히 복건과 심의의 깃, 세조대의 검은 색을 칠한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해충에 의한 손상으로 여겨지며 시급한 보존 처리가 필요하다. 안동권씨 문순공파 종중의 황강영당 소장으로, 제천의병 전시관에 위탁하였다. 2012년 7월 6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복건과 심의를 착용한 문인의 초상화는 조선 중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가 관복본(官服本)이 아닌 야복본(野服本)으로만 그려지면서 17세기 중반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한원진의 반신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하는데, 복건과 심의를 착용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얼굴 생김새에서도 같은 인물임을 알아 볼 수 있지만 화법은 차이가 있어 문인을 그린 초상화의 양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 그림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 문인 초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19세기에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인 한원진 초상의 범본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