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좌안팔분면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 바닥에 앉은 모습으로 그린 전신상)이다. 동파관(東坡冠: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한가하게 지낼 때 쓰던 관. 중국 북송대 문인인 소식이 착용했다고 하여 그의 호를 따 동파관이라 하였다)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연녹색 난삼(襴衫: 조선시대 유생들이 입던 포의 하나로 소매, 깃, 도련에 검을 선을 둘렀다)을 입고 화문석에 앉은 모습이다. 화면 위쪽에 '병계 윤선생진상(屛溪尹先生眞像)'이라는 제기가 있다.
윤봉구(尹鳳九, 1681∼1767)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鷹), 호는 병계(屛溪), 또는 구암(久菴)이다. 수암 권상하의 문인이며 강문팔학사의 한 사람이다.
윤봉구는 동파관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난삼을 입고 화문석 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문석은 18세기 사대부의 초상에서 보기 드문 예로 주목된다. 난삼의 아래 자락을 둥글게 말아 넣은 듯한 표현은 권상하 초상화와 유사하고 크기도 권상하 초상과 비슷해 당시 전신부좌상의 시대적 양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얼굴은 배채한 후 갈색 필선으로 이목구비를 묘사하고 눈 주위, 코, 법령에 선염을 가해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이마와 코 위의 마마자국을 세밀하게 그려 넣었고 짙은 눈썹이 두드러진다. 옷 주름 주위에 짙은 색을 더해 옷감의 독특한 질감을 암시하는 연녹색의 난삼은 두 손을 모으고 앉은 단정한 자세를 드러내며, 주인공의 허리 부분을 가로지르는 화문석의 선은 화면에 공간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과 같이 동파관에 난삼을 착용하고, 화문석에 앉은 윤봉구 초상이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동일한 의관(衣冠)을 착용한 모습을 가슴 위까지만 그린 좌안팔분면의 반신상과 복건에 심의를 착용한 반신상이 함께 있는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 미국 소장본에는 화면 위쪽에 '병계거사 칠십세진(屛溪居士七十歲眞)'이라는 제기와 동생인 윤봉오(尹鳳五, 1688∼1769)가 써 넣은 윤봉구의 자경찬(自警贊)이 있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 '화사변상벽사(畵師卞相壁寫)'라는 관지가 있어 1750년(영조 26)에 화원 화가인 변상벽(卞相壁, 1726이전∼1775)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윤봉구의 문집인 『병계집(屛溪集)』에는 초상화를 그린 변상벽에게 준 글인 「증사진변군상벽(贈寫眞卞君相壁)」이 수록되어 있어 변상벽이 그의 초상화를 그렸음이 확인된다.
이 작품은 미국 소장본과 거의 같은 표현과 양식의 초상으로, 두 작품이 모두 변상벽이 그린 동일한 초본을 범본(範本)으로 1750년(영조 26)경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주며, 18세기에 많은 초상을 제작한 화원화가 변상벽의 화풍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반신상으로 형식과 크기가 다르지만 역시 같은 초본을 범본으로 삼아 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단 바탕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큰 크기의 초상화로 세로 132㎝, 가로 93㎝이며 권상하의 초상화와 거의 같은 크기이다. 비단 바탕이 여러 군데 떨어져 나가고 그림 부분에도 심각한 박락이 있어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얼굴 아래 수염 부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며 난삼의 채색도 변색되었다. 적절한 보존 처리가 시급한 상태이다. 안동권씨 문순공파 종중의 황강영당에서 모시던 초상으로, 제천의병 전시관에 위탁하였고, 2012년 7월 6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지만, 변상벽이 그린 야복 초상화(野服肖像畵)의 화풍을 밝혀주는 좋은 예이며, 같은 초본을 사용해 제작한 여러 작품을 비교해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나 이모 여부에 따른 양식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