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섭 초상 ( )

권섭 초상
권섭 초상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후기의 문인 옥소(玉所) 권섭의 초상화.
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 옥소(玉所) 권섭의 초상화.
구성 및 형식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반신상으로 곧은 깃의 직령포를 입고 특이한 모양의 관을 쓴 모습이다. 화면 위쪽에 “백취옹 육십사세진(百趣翁六十四歲眞)”이라는 제기가 있어 1734년(영조 10)에 제작된 초상화임을 알 수 있다. 인물 좌우의 글씨는 권섭의 자술(自述)을 이원태(李元泰)가 쓴 것으로 진응회(秦應會, 1705∼?)가 그렸다는 내용이 있어 화가를 밝혀준다.

내용

권섭(權燮, 1671∼1759)은 권상명(權尙明, 1652∼1684)의 큰 아들로,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 백취옹(百趣翁) 등이다. 시문에 뛰어났고 회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14세에 부친을 여의고 백부인 권상하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다. 52세에 권상하가 살던 황강리로 이주해 청풍, 황강, 제천, 문경 일대에서 생활하였으며, 89세에 제천 문안동에서 일생을 마쳤다.

초상화에 관심이 많았던 권섭은 초상화에 대해 쓴 제발과 제시, 찬문을 여러 편 남겼다. 외숙인 이의현(李宜顯, 169∼1745)과 권상하의 초상화에 대한 찬문을 비롯해 타인이 초상화에 남긴 발문 6편이 권섭의 문집인 『옥소고(玉所稿)』에 수록되어 있다. 『옥소고』의 「술회시서(述懷詩敍)」에는 “화상(畵像)을 본 것이 23회인데, 외람되이 자찬(自讚)을 쓴 것이 4번”이라는 서술이 있어 초상화에 대한 그의 관심을 알 수 있다. 54세에 그린 초상화에는 “누상자찬(陋像自贊, 자신의 초상을 겸손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을 남겼으며, 64세의 모습을 그린 이 초상화에 쓴 자술에서는 노년에 이른 문인의 심회를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화면 위쪽에 기술된 "백취옹 육십사세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늙어서 한 평생을 따져보자면, 어사대(御史臺)에 관직이 없어 한가하고 편안하게 영위(營爲)함이 없이, 머리 깎지 않은 승려의 절 한 방에서 글을 읽었으니, 정말 고루하고 썩은 유자(儒者) 같구나. 반평생을 질탕하게 놀았으니, 혹자는 풍류남아로 의심하겠으나, 필경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의 기운이리라. 이것이 옥소산인(玉所山人)이고 운제거사(雲梯居士)다. 백취옹이 스스로 짓고, 이원태(李元泰)가 쓰다[老而有是非 無官御史之臺 澹然無營爲 有髮頭陁之寺 一室伊吾 眞似乎章 句腐儒 半生跌宕 或疑其風流男子 畢竟水石烟霞之氣 是爲玉所山人雲梯居士 翁自述李元泰書].”

또한 진응회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 다른 사람인것 같다고 하자 이에 희롱조로 쓴 찬문도 실려 있다[秦應會爲我寫照 人曰 非爾也 別是某村之某也 戱書爲贊].

"작은 얼굴에 아름다운 수염, 그대가 정말 맞는가? 사업을 일으키는 데서 물러났으니, 그것이 누구인들 무슨 수가 있느냐? 이것이 하나의 장주(莊周: 莊子)이니, 바로 백 명의 동파(東坡: 蘇軾)와 같네[小面美髥 子眞是耶 退之熙載 其誰其那 是一莊周 卽百東坡]."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초상은 양날개가 없이 건으로 늘어뜨린 특이한 형태의 사모를 착용하고, 곧은 깃의 흰색 직령포에 검은 색 세조대(細絛帶,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만든 실띠)를 묶은 모습이다. 어깨 위쪽에서 머리 뒤쪽으로 관모와 같은 회색의 둥근 원이 그려져 있는데,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푸른색의 드림이 부착된 관모와 함께 조선시대 사대부 초상화에서 볼 수 없는 드문 예로 주목된다.

얼굴은 배채한 후 갈색 필선으로 이목구비를 묘사하고 이마, 눈 주위, 법령에 잔주름을 가해 마른 안모의 느낌을 강조하였다. 양쪽 눈의 흰자위 안쪽에 붉은 기운이 두드러지고 검고 흰 수염은 세밀한 필선으로 그려 넣어 권섭의 개성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미간의 주름과 치켜 올라간 눈매, 갸름한 턱선 등에서 인물이 지닌 예민한 감성과 섬세함이 부각된다.

이 초상을 그린 진응회는 화원 화가로 초상화에 뛰어났던 진재해(秦再奚, ?∼약 1735)의 아들인데, 부자가 모두 초상화를 잘 그렸다. 진응회는 1748년(영조 24)에 장득만(張得萬), 정홍래(鄭弘來) 등과 함께 숙종의 어진 모사에 동참화사로 참여하였다. 이 작품은 진재해가 1725년(영조 1)에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호(鄭澔, 1648∼1736)의 초상화와 비교하면, 눈 주위의 표현이나 광대뼈 아래에 음영을 가한 표현 방법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현황

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반신상으로, 크기는 세로 65㎝, 가로 46.5㎝이다. 비단에 꺾인 부분이 많으며 양쪽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부분이 검게 변색되었다. 2012년 7월 6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권섭의 초상화는 총 두 종류로, 앞서 설명한 것 외에 문경옛길박물관에 소장된 유복본 초상이 있다. 이것은 1724년 도화서 화원인 이치가 그린 것으로 검고 두꺼운 동정 깃의 학창의를 입고 유건을 쓴 초상이다.

의의와 평가

'백취옹 육십사세진(百趣翁六十四歲眞)'이라는 제기에서 권섭이 황강리 일대에서 활동하던 때에 그린 것으로, 생시에 제작된 초상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화원 화가로, 어진 제작에 참여한 진재해와 아들 진응회의 화풍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사적인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어진의궤와 미술사: 조선국왕 초상화의 제작과 모사』(이성미, 소와당, 2012).
『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편저, 미술문화, 1999)
「옥소 권섭의 소장 화첩과 권신응의 회화」(윤진영,『장서각』제20집, 2008)
「옥소 권섭(1671∼1759)의 그림 취미와 회화관」(윤진영,『정신문화연구』, 2007)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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