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산성(尙州山城) · 백화산성(白華山城) · 보문성(寶門城)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금돌성의 위치를 상주 백화산에 비정하였다. 1969년 단국대학교에서 백화산성에 대해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금돌성으로 추정하였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현,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조에 “또 태자와 대장군 유신, 장군 품일과 흠춘(춘을 혹은 순이라고도 한다) 등에게 명하여 정예병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응원하도록 하고, 임금은 금돌성에 가서 머물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백제정벌시 전진기지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전략적 중요성의 감소로 방치되었다가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978년 국방유적 보수사업에 따라 무너진 성벽 에 대해 보수가 이루어졌다. 지리적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천연 요새이며 길이는 2~3㎞, 너비(폭)는 약 4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