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성 ()

신종교
지명
1890∼1954. 갱정유도(更定儒道)의 제1대 교조.
정의
1890∼1954. 갱정유도(更定儒道)의 제1대 교조.
개설

전라북도 순창 출생. 농부인 강덕진(姜德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7세에 혼인하여 농사에 종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빈한한 농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세기말 변혁의 기운과 전근대적 농촌사회의 운명적인 침체상을 경험한 그는 종교체험을 통한 득도의 경지를 꿈꾸었다.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은 전라북도 정읍군 산내면 진삼동이며, 그 곳에서 수도를 시작한 이유는 산내면 진삼동에 수도할만한 빈집을 찾았고 집 주인의 허락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이름을 기동(基東)이라 했다. 그 뒤 다시 순창군 쌍치면으로 돌아와 오낙중(吳洛中)으로부터 『음부경(陰符經)』을 빌려보면서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39세 때, 순창군에 있는 회문산(回文山)금강암(金剛庵)에서 처자와 함께 기거하면서, 득도를 위한 고행과 정진에 전념하였다.

1929년 마침내 천지를 뒤엎는 듯한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종국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를 일관되게 기록한 자료는 없으나 그의 종교수련과 관련하여 인격형성의 과정을 미루어보면, 정서적 기질이 남달리 특출한 것 같다.

그는 처, 그리고 아들인 강용학(姜龍鶴) 등과 동거하면서 이른바 누건수(漏巾水) 교리를 터득했는데, 교리의 내용은 세 사람이 만민의 죄를 속죄하여 흘린 눈물을 받아서 서로 나누어 마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성취했다고 하는 뜻이다.

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죽은 처의 시체와 동거하면서 본인, 죽은 처, 아들의 삼부부자(三夫婦子)가 영혼을 엇바꾸는 생사교역(生死交易)을 성취했다고 한다.

여광여취(如狂如醉)의 상태에서 신천지의 도래를 선언하고, 병을 치료하는 등의 일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에 일제 당국의 간섭과 주변 사람들의 적대시하는 환경에서 본격적인 포교활동은 펼칠 수가 없었다.

갱정유도 교리의 근간인 소박한 구제론과 종말관은 이른바 ‘누건수’의 종교체험에서 나온 것이며, 8·15광복 후 본격적인 교단의 창설과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4년 이른바 중흥국(中興國)을 건설한다는 정치적 구호의 여파로 인하여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참고문헌

『만민해원경(萬民解寃經)』
「갱정유도」(김홍철,『한국민중종교사상론』,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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