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대투겁(車軸頭)·을자형 동기(乙字形銅器) 등의 거마구(車馬具)와 함께 출토되고 있어 수레 부속품의 일부임이 밝혀졌으나, 확실한 용도는 알 수 없고 수레의 앉는 자리 둘레에 세운 기둥장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레 부속품은 대체로 B.C.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동강유역에서 널무덤(木棺墓)과 덧널무덤(木槨墓) 유적에 부장된 부속금구들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는 수레 일체를 부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부속금구만 해체되어 부장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거여구 중에서 고깔동기는 윗부분이 고깔 또는 버섯모양을 하고 있고, 그 아래 목이 약간 죄인 원통형의 몸체가 달려 있다. 몸체는 한개 내지 두개의 튀어나온 둥근 테두리를 가진 것과, 이러한 테두리가 없고 아래쪽이 약간 벌어진 형태의 것 두 종류가 있다. 전자의 테두리는 그 바깥 표면에 얕은 홈이 패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고, 후자에는 아래쪽 가까이에 못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있다.
고깔동기는 모두 속이 비어 있는 이른바 중공(中空)의 것인데, 평양 상리유적에서는 몸체 내부에 삽입되었던 목제 자루가 함께 출토된 바 있다. 고깔모양의 부분 내부에는 주조시에 속을 비게 하기 위하여 넣었던 주사토(鑄砂土)나 점토가 그대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동기는 기타의 수레부속구와 함께 평안도·황해도를 중심으로 출토되었으며, 대구 평리동·전(傳) 경주 안계리 등 대구와 경상북도 일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고깔동기를 포함한 거여구는 한군현(漢郡縣) 설치 이전에 이미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영향을 받아 서북한지방에 처음 보급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한지방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의 한국식 청동기와 함께 삿갓모양동기, 개궁모 등이 소량 부장된 것이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