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악은 삼국시대 중국과 일본의 궁중에서 고구려의 음악인들이 연주한 음악이다. 일명 고려기라고도 한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음악이 중국에 소개돼 수나라의 아홉 가지 춤곡인 '구부기'에 포함되었다. 고려악은 당나라 춤곡인 '십부기'에서도 다른 나라의 연주단들과 함께 연주되기도 했다. 고려악에 사용된 악기는 14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일본에서 소개된 고려악은 고마가쿠라고 불렸으며 삼국악으로 알려졌다. 684년 『일본서기』에 고려악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일본에서 9세기 이후 고려악은 삼국악 및 발해악을 포함하는 뜻으로 쓰인다.
일명 고려기(高麗伎)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중국에 소개되었던 고구려 음악은 『수서』와 『신당서』에서 고려기로 기록되었고, 『구당서』에서는 고려악으로 불렸는데, 고려기나 고려악이라는 명칭은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에 고마가쿠(高麗樂)라고 불린 고려악의 경우처럼 고구려의 음악을 의미했지 고려의 음악을 뜻하지 않았다.
고려기는 수나라의 개황(開皇) 초에 설치된 칠부악(七部樂)에 포함되었으며, 중국의 국기(國伎) 및 청상기(淸商伎), 인도의 천축기(天竺伎), 보하라(Bokhara)의 안국기(安國伎), 쿠처(庫車)의 구자기(龜玆伎), 진(晉)나라의 가면기인 문강기(文康伎)와 함께 수나라 궁중에서 연주되었다. 고려기는 수나라의 대업(大業) 때 확대된 구부기(九部伎)에도 포함되었고, 당나라 태종 때의 십부기(十部伎)에서도 다른 나라의 연주단들과 함께 연주되었다. 구부악(九部樂)에 포함되었던 고려기에서 사용되던 고구려 악기들은 탄쟁(彈箏) · 와공후(臥箜篌) · 수공후(豎箜篌) · 비파(琵琶) · 오현(五絃) · 적(笛) · 생(笙) · 소(簫) · 소필률(小觱篥) · 도피필률(桃皮觱篥) · 요고(腰鼓) · 제고(齊鼓) · 담고(擔鼓) · 패(貝) 등 14종이라고 『수서』에 기록되었다.
한편, 나라시대 일본에 소개된 고려악은 고마가쿠라고 불렸으며, 구다라가쿠(百濟樂)라고 불린 백제악 및 시라기가쿠(新羅樂)라고 불린 신라악과 함께 삼국악이라고 알려졌다. 고려악을 포함한 삼국악은 도가쿠(唐樂)라고 불린 당악(唐樂)과 더불어 일본의 아악을 형성하는 데 뼈대 구실을 하였으며, 현재 일본 전통음악인 아악에 전승되고 있다. 고려악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기록된 때는 고구려의 멸망 이후인 684년이라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일본에서 연주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즉, 『일본서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사신이 머물러 쉬던 고려관(高麗館) 또는 상락관(相樂館)이 570년에 기공되었고, 그 해 그 상락관에서 일본 국왕이 고구려 사신을 환영하는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런 잔치에서는 사신을 위해 본국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대보율령(大寶律令)의 직원령(職員令)에 의하면, 702년에 고려악사 4인과 고려악생 20인이 일본 왕립 음악기관이었던 아악료(雅樂寮)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의하면 고려악생 20인이 731년에 8인으로 감원되었다. 809년에 활약했던 고려악사 4인은 횡적(橫笛) · 군후(𥰃𥱌) · 막목(莫目) · 무(舞)를 가르쳤다고 『일본후기(日本後紀)』에 기록되었다. 731년 이후 악생은 8인에서 다시 20인으로 증원되었다가 848년에 18인으로 감원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
고려악사와 고려악생들이 연주했던 고려악은 닌묘왕(仁明王) 때 아악료를 개편함에 따라 백제악과 신라악 및 발해악(渤海樂)을 통합하였다. 그러므로 9세기 이후 고려악은 삼국악 및 발해악을 포함하는 뜻으로 쓰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합 이전의 고려악은 고구려 본국에서 연주되었던 연향악(宴享樂)의 일종으로 보이며, 백제악의 경우처럼 노래와 춤을 포함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