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 ()

고희동
고희동
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이칭
춘곡(春谷)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6년(고종 23)
사망 연도
1965년
본관
제주(濟州)
출생지
서울
정의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제주. 호는 춘곡(春谷). 서울 출생. 대한제국 말기에 군수를 지낸 영철(永喆)의 셋째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세 때 한성법어학교(漢城法語學校)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1904년 궁내부 주사로 취직하여 궁중 내의 프랑스어 통역과 문서 번역을 하였다. 이 무렵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관리 생활을 버리고 현실 도피책으로 그림을 시작하였다.

당대의 주1로 알려진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 주2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화가로서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당시 화단은 중국의 화보(畫譜: 그림을 모아서 만든 책)를 충실히 임모(臨模: 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에 주3을 느낀 그는 궁내부 시절 외국인들과 접촉으로 대할 수 있었던 서양의 그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西洋畫科)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서양화 수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서양화 제작이 되었다. 5년간의 수업을 마치고 1915년 귀국하자 그는 신미술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한다.

1918년 당시 서화계의 주4과 대가들을 주5하여 최초의 한국인 서화가들의 모임이자 근대적인 의미의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書畫協會)를 결성하였다(초대회장 안중식, 총무 고희동).

서화협회의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회원 작품전으로, 192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강당에서 제1회 서화협회전이 열렸다. 이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근대적인 전시회였다. 회원전과 더불어 계몽 사업으로 한국 최초의 미술지인 『서화협회보(書畫協會報)』를 창간하였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정원에서」라는 작품을 서양화부, 「여름의 시골」이라는 작품을 동양화부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회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를 거부, 그 뒤 줄곧 서화협회만을 이끌었다.

1936년 제15회전을 끝으로 서화협회가 더이상 열리지 않을 때까지 총무 또는 회장으로 민족진영의 미술가 단합에 정력을 기울였다. 광복이 되자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그리고 우익 미술가들의 집결체인 주6가 창립되자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오랫동안 심사 위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부산 피난 시절을 전후하여 한국민주당에 가입, 4 · 19 혁명 이후 민주당이 집권하자 참의원을 지냈다.

평가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새로운 조형 방법을 주7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그리고 주8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로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일본에서 귀국 후 10년 만에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향, 서양화적 수법을 가미한 풍(風)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양식적으로는 독자성을 이루지 못하여 독립된 화가로서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춘곡 고희동』(조은정, 컬처북스, 2015)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오광수, 열화당, 1982)
『한국근대미술연구(韓國近代美術硏究)』(이경성, 동화출판공사, 1980)
『한국근대미술산고(韓國近代美術散考)』(이구열, 을유문화사, 1978)
주석
주1

전문 분야에서 뛰어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    우리말샘

주2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    우리말샘

주3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    우리말샘

주4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지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중요한 인물.    우리말샘

주5

잘 설득하고 달래어 권함.    우리말샘

주6

1945년 해방 직후에 창립된 국내 미술 단체. 1948년에 대한 미술 협회로 확대, 재편되었다가 1960년에 한국 미술 협회로 흡수, 통합되었다.    우리말샘

주7

어떤 발전 수준에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주8

화가들의 사회.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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