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충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를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32년(고종 19)
주요 관직
야별초지유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를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32년 몽고의 침입이 본격화되자, 집권자 최우(崔瑀)가 재추(宰樞)를 불러들여 천도할 것을 의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최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 있던 김세충은 “송경(松京: 지금의 경기도 개성)은 태조 이래 2백여 년이나 지켜온 도성으로 성이 견고하고 군사와 양식이 족하니, 마땅히 힘을 합하여 지켜 사직을 호위할 수 있는데, 이를 버리고 가면 도읍할 땅이 어디냐?”라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성을 지킬 계책이 있느냐는 최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에 어사대부 대집성(大集成)과 응양군상호군 김현보(金鉉寶)의 주장에 따라 참형당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하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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