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몽고의 침입이 본격화되자, 집권자 최우(崔瑀)가 재추(宰樞)를 불러들여 천도할 것을 의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최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 있던 김세충은 “송경(松京)은 태조 이래 2백여 년이나 지켜온 도성으로 성이 견고하고 군사와 양식이 족하니, 마땅히 힘을 합하여 지켜 사직을 호위할 수 있는데, 이를 버리고 가면 도읍할 땅이 어디냐?”라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성을 지킬 계책이 있느냐는 최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에 어사대부 대집성(大集成)과 응양군상호군 김현보(金鉉寶)의 주장에 따라 참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