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규 ()

근대사
인물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이칭
송암(松巖), 송석(松石), 법암(法菴)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6년
사망 연도
1950년
출생지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
주요 경력
천도교중앙총부 전제관장|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성지부 지부장|천도교 도령
대표 상훈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관련 사건
3·1운동
내용 요약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정의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김완규(金完圭, 1876~1950)는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호는 송암(松巖) · 송석(松石)이고, 천도교 도호(道號)는 법암(法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주요 활동

1898년 전라도 여수의 통신주사 및 한성부 주사 등을 역임하였다. 1906년 2월 20일 권동진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06년부터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전제관장 등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8월 천도교 기관지로 창간된 『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26일 오세창으로부터 기독교 · 불교와 함께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서 서명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찬성하였다. 다음날인 2월 27일 천도교 대표들과 함께 「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3월 1일 아침 최린으로부터 독립선언식 장소가 주1에서 명월관 지점 태화관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후 2시경 태화관에 민족 대표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29명이 모였다.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민족 대표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어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으로부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어 1921년 11월 4일 만기 출옥하였다.

1922년 2월 손병희로부터 법암이라는 도호를 받았고, 같은 해 4월에 천도교중앙총부 서무과 주임에 임명되었다. 천도교중앙총부 근무를 그만둔 후에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살다가 1925년 5월 충청남도 서산으로 이주하였다.

광복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재정부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성지부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 천도교 도령 자리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주2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이현희, 「천도교의 민족대표 김완규와 그의 독립정신」(『동학학보』 14, 2007)
주석
주1

서울특별시 종로 2가에 있는 공원. 원래 조선 세조 때에 세워진 원각사가 있던 곳으로 광무 원년(1897)에 영국인 고문 브라운이 설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으로 건립되었다. 3ㆍ1 운동 때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유명하며, 원각사지, 팔각정, 앙부일영의 대석(臺石), 13층 탑, 귀부(龜趺) 비석 따위가 남아 있다. 정식 명칭은 ‘서울 탑골 공원’이다.    우리말샘

주2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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