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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규(金完圭)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여수통신주사, 한성부주사, 국민회 재정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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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여수통신주사, 한성부주사, 국민회 재정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호는 송암(松巖). 서울 출신.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898년 여수통신주사(麗水通信主事)·한성부주사(漢城府主事) 등을 지내고, 국권상실 이후에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봉도(奉道)·법암장(法庵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하여 상경하여,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독립만세운동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 달 27일 김상규(金相奎)의 집에서 최린(崔麟)·오세창·권병덕(權秉悳) 등과 서명, 날인하였다. 3월 1일 태화관(泰華館)의 독립선언식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어 1920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道師)로서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에는 국민회 재정부장을 지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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