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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무늬토기(─土器)

선사문화유물

 그릇의 표면에 점토띠를 덧붙여 각종 문양효과를 낸 신석기시대 조기(早期)를 대표하는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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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무늬토기
이칭
융기문토기
분야
선사문화
유형
유물
성격
토기
제작시기
신석기시대 조기
재질
시대
선사-석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그릇의 표면에 점토띠를 덧붙여 각종 문양효과를 낸 신석기시대 조기(早期)를 대표하는 토기.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일명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라고도 한다. 덧무늬는 점토띠의 굵기나 점토띠 상부에 누름문〔刻目文〕의 유무에 따라 태선융기문토기(太線隆起文土器)와 세선융기문토기(細線隆起文土器), 혹은 융기대문(隆起帶文)과 융기선문(隆起線文)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점토알갱이를 규칙적으로 붙인 융기점열문(隆起點列文), 혹은 두립문(豆粒文)이 있다.
이 토기의 분포 범위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상노대도·신암리·욕지도를 비롯하여 동남해안의 부산 동삼동, 양산 신암리, 양양 오산리, 울산 우봉리, 중서부 지역의 단양 상시3동굴유적, 춘천 내평리, 대동강연안의 청호리유적, 함경북도 서수리유적 등 전국에 걸쳐 있다.
신암리나 동삼동 출토의 것은 선즐문토기(先櫛文土器) 또는 신석기시대 전기로, 그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에 의하여 서기전 3000년대로 여겨왔으나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유적의 연대가 서기전 4000년대로 나와 연대는 그보다 앞설 것으로 예측되었다.
한편, 일본 대마도 고시다카유적〔越高遺蹟〕에서 동삼동의 것과 같은 한국식 덧무늬토기가 발견되고 그 연대는 서기전 5000∼4500년으로, 앞서 동삼동 최하층 문화보다도 오히려 앞서고 있다. 최근 양양 오산리 B지구에서 덧무늬토기가 나오고 그 연대가 서기전 5100년(7050±120B.P)대로 나타나 이제까지 나온 것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 일본 것과 거의 같거나 약간 앞설 뿐만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도 덧무늬토기가 빗살무늬토기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것임이 확인되었다.
이밖에 덧무늬토기의 원류로 보아왔던 시베리아 아무르강 중류역의 노보페트로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내부탄화물을 측정한 결과 13000∼9000B.P가 나왔다. 다만, 이 토기와 덧무늬토기의 절대연대와 지역간 관련성의 사실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덧무늬토기에 대한 편년은 4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1단계는 문양의 시문부위가 동체부에 집중되며 저부가 비교적 넓고 기고(器高) 대 구경(口徑)의 비율이 1이상인 심발형이 많다. 2단계는 문양대의 아랫부분 구획이 없어지고 저부가 좁은 평조로 변하면서 기고 대 구경 비율이 1에 가까운 발형이나 완형토기가 증가면서 침선문이 복합되는 경우가 나타난다. 3단계는 문양이 구연부까지 나타나며 저부 형태는 평저에서 원저로 변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4단계는 기형(器形)이 대부분 첨저나 원저형으로 변화하며 완형토기의 비율이 증가하고 호형토기(壺形土器)가 공반되는 특징을 가진다. 문양은 융기문양이 퇴화하거나 침선문양과의 복합비율이 증가하며, 구순부에는 누름문이 나타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신석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덧무늬토기의 연대와 편년은 오랫동안 고고학계에서 논란거리였다. 특히, 덧무늬토기가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으로부터 중국 동북지역, 한반도, 일본에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로 깊은 상호관련성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덧무늬토기의 자세한 편년이나 소멸 시기 및 문화계통을 비롯한 여러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강원도오산리유적진전보고」(임효재,『한국고고학연보』 9,1982)

  • 韓國隆起文土器の硏究  (坂田邦洋, 昭和堂, 197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최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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