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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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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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단체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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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이승만(李承晩)·민찬호(閔贊鎬)·안현경(安顯京)·이종관(李鍾寬) 등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만들었다.

활동내용

“상해의 임시정부를 옹호하며 대동 단결을 도모하되 임시정부의 위신을 타락하거나 방해하려는 불충 불의한 국민이 있으면 본회가 일심 합력하여 방어하며 상당한 방법으로 조처함.”이라고 규정에 명시한 것처럼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따라서 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을 종신 총재로 추대하고, 총재에 대해 절대 복종할 것을 신조로 하였다.

이 회의 활동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이승만의 3대 정강은 다음과 같다.

① 독립선언에 선포된 바 공약 삼장을 실시할지니 3·1정신을 발휘하여 끝까지 정의와 인도를 주장하여 비폭력적인 희생적 행동으로 우리 대업을 성취하자. ② 조직적 행동이 성공의 요소이니 우리는 개인 행동을 일체 버리고 단체 범위 안에서 질서를 존중하여 지휘를 복종하자. ③ 경제 자유가 민족의 생명이니 자작 자급을 함께 도모하자.

이 단체는 임시정부에 자금을 후원하고 경제적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자본금 7만 달러로 동지식산회사(同志殖産會社)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고정 자본금이 1만 2천5백 달러가 되면 주식회사로서 인가를 얻어 동지촌(同志村)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1925년 3월 하와이 오올라 지방에 9,900에이커 상당의 토지를 구입, 동지촌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929년 실패로 끝났다. 하와이 연안 각 섬에 지방회를 두었으며, 미국 본토에도 조직을 확대해 시카고·뉴욕·몬타나·디트로이트 등지에 지방회를 설치하였다. 1929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도 지방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대한인국민회와 대립, 재미교포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1941년 재미동포 통합 운동의 하나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되자 이에 가입, 잠시 재미 한인단체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1943년 국민회와의 마찰을 이유로 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관지 『태평양주보(太平洋週報)』를 발행하여 독립사상과 애국심 앙양, 항일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한편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동지회는 1943년 동지회 북미지방총회로 이름을 바꾸고, 로스앤젤레스와 중가주지방회(中加州地方會)를 산하 단체로 하여 기관지 『북미시보(北美時報)』를 발행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3·5(국사편찬위원회, 1967·1969)
『재미한인오십년사(在美韓人五十年史)』(김원용,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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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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